춘천 천전리지석묘군에서 만난 들판의 깊은 선사 흔적
맑은 하늘 아래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던 오후, 춘천 신북읍의 천전리지석묘군을 찾았습니다.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 한가운데, 낮게 솟은 돌무덤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언덕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천 년의 시간이 돌마다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가 살짝 흔들리고, 그 사이로 커다란 덮개돌들이 햇빛을 받아 은은히 빛났습니다. 도시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고, 오직 바람과 흙냄새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이 풍경 속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의 숨결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1. 신북읍 들판 끝에서 만난 유적
천전리지석묘군은 춘천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15분 거리, 신북읍 천전리 마을 외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 ‘천전리 선사유적지’ 표지판이 나타나고, 좁은 농로를 따라 들어서면 작은 공터가 주차장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려 논둑길을 따라 약 200m 정도 걸으면 지석묘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논 사이로 난 오솔길은 평탄했고, 곳곳에 설치된 안내 표지 덕분에 찾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는 길에 들리는 개울물 소리와 흙길의 감촉이 묘하게 차분했습니다. 낮은 언덕 위에 크고 작은 지석묘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배치가 마을의 오래된 질서를 닮아 있었습니다.
2. 지석묘군의 형태와 공간감
천전리지석묘군은 덮개돌(상석)을 중심으로 한 탁자식 고인돌 형태가 다수이며, 전체적으로 완만한 구릉지를 따라 배치되어 있습니다. 덮개돌의 크기는 다양했지만 대체로 길이 3~4미터, 두께 50센티미터 안팎으로 거대한 화강암을 사용했습니다. 돌 표면에는 세월의 풍화로 생긴 홈과 이끼가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색이 햇빛에 따라 다르게 변했습니다. 일부 지석묘는 받침돌이 기울어진 채 남아 있었으나 구조는 여전히 견고했습니다. 지석묘 사이로 억새와 풀들이 자연스럽게 자라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을 이루었습니다. 인위적인 복원 흔적이 거의 없어, 시간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3. 선사시대의 흔적과 역사적 가치
이 지석묘군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지역의 지배층이나 공동체의 지도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합니다. 안내판에는 ‘춘천 일대에서 확인된 가장 규모가 큰 지석묘 밀집지 중 하나’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실제로 현장을 보면 고인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있어 집단 묘역의 형태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돌을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며, 받침돌의 방향이 일정한 점으로 보아 당시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덮개돌 아래에서는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고 하며, 이로 인해 천전리 일대가 청동기 시대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라, 한 시대의 세계관이 담긴 흔적이었습니다.
4. 조용히 보존된 유적의 현장
지석묘군 주변은 인위적인 장식 없이 정갈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억새가 자연스럽게 자라 풍경의 일부가 되었고, 안내판 옆에는 방문객을 위한 작은 쉼터 벤치가 놓여 있었습니다. 비석 형태의 유적 안내문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사실과 함께 보존 현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바닥의 흙길은 단단히 다져져 있어 비가 온 다음 날에도 걷기 좋았습니다. 오후 햇살이 낮게 비치며 덮개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고, 그 길 위로 떨어진 낙엽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관리가 눈에 띄게 과하지 않아 오히려 자연스러웠고, 유적 본연의 고요함이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그 정적 속에서 긴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5. 함께 둘러볼 인근 유적지
천전리지석묘군을 둘러본 후에는 차량으로 10분 거리의 ‘춘천 구석기 유적 전시관’을 방문했습니다. 선사시대 생활 유물과 함께 천전리 일대에서 출토된 토기와 석기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봉의산성’으로 이동해 조선시대 성곽 유적을 함께 보면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근처에는 ‘신북읍 온의마을’이 있어 전통 한옥과 찻집이 어우러진 거리 산책도 좋았습니다. 점심에는 인근 ‘의암막국수’에서 춘천의 대표 음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선사에서 조선까지, 한 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동선이었습니다.
6. 방문 시 유의할 점
천전리지석묘군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다만 들판을 따라 조성된 길이 비포장이라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장화를 신거나 운동화를 추천합니다. 유적지 내에서는 덮개돌에 오르거나 만지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으며, 표식선을 넘지 않아야 합니다. 봄과 가을은 날씨가 온화해 탐방하기 좋고,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아 긴 옷차림이 좋습니다. 주변에 상점이 거의 없으므로 물과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면 편리합니다. 오후 늦게 방문하면 햇빛이 서쪽으로 기울며 돌무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 됩니다.
마무리
춘천천전리지석묘군은 거대한 돌덩이 속에 숨겨진 인류의 오래된 이야기였습니다. 수천 년 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하늘과 땅, 그리고 삶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 흔적이 돌마다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소리조차 그 시대의 숨결처럼 들렸습니다. 화려한 유적은 아니지만, 고요함 속에 담긴 무게가 깊었습니다. 잠시 앉아 들판을 바라보니 돌무덤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며 시간의 층을 드러내는 듯했습니다. 다음에는 초여름의 녹음이 짙을 때 다시 찾아, 푸른 들판 속에서 또 다른 얼굴의 지석묘군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곳은 시간과 자연, 그리고 사람의 기억이 함께 머무는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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